상속세 관련 상담을 하다 보면, 가족의 죽음이 주는 슬픔보다 상속재산 분배와 세금 부담으로 인해 남보다 못한 원수로 전락하는 유족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의 기저에는 단순히 욕심의 문제를 넘어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채택하고 있는 '유산과세형'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피상속인(망자)의 전체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이 방식은 상속인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적 불합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유산과세형 상속세는 망자가 남긴 유산 총액에 누진세율(최대 50%)을 적용해 세금을 계산한 뒤, 이를 상속인들이 각자 받은 재산 비율대로 나누어 내는 구조다. 이는 각자가 받은 재산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똑같은 세율이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상속인 중 누군가 세금을 내지 못하면 다른 상속인이 대신 내야 하는 끔찍한 '연대납부의무'라는 굴레까지 씌워진다.
필자가 겪은 실제 사례다. 기업을 이끌던 자녀가 중병에 걸리자, 회사가 혼란한 틈을 타 다른 형제들이 주식을 무상으로 빼돌려 자신들 명의로 증여세 신고를 해버린 사건이 있었다. 얼마 후 그 자녀가 사망하자, 배우자를 비롯한 남은 유족들은 상속세를 신고하며 다른 형제들이 무상으로 빼앗아간 주식을 상속재산에 가산해야만 했다. 이때 형제들은 낮은 세율로 증여세를 냈지만, 합산 결과 과세표준이 30억 원을 훌쩍 넘기며 최고세율(50%) 적용으로 추가 발생한 세금은 온전히 유족(배우자와 자녀)의 몫이 되고 말았다.
비슷한 비극은 또 있다. 사망 직전 내연녀에게 은밀히 챙겨준 재산이 뒤늦게 밝혀진 경우다. 내연녀는 적은 증여세만 냈지만, 상속개시일 전 5년 이내에 상속인이 아닌 자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재산에 가산된다는 규정 탓에, 누진세율을 적용받아 추가 발생한 세금은 상속인들이 대신 내야 했다.
이처럼 피상속인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과세형의 폐해가 잇따르자, 정부는 상속인 각자가 물려받는 재산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취득과세형'으로의 개편을 예고하기는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취득과세형은 재산을 적게 받으면 낮은 세율을 적용받아 과세 형평성에 부합하고, 오늘날처럼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연대납부의무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이미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안착했고 완벽한 국세통합시스템(NTIS)이 구축된 우리나라 환경에서 취득과세형의 도입은 기술적으로 무리가 없다. 하지만 조세 저항이나 세수 감소 우려, 기존 세제와의 충돌 등 복잡한 실무적 난관들 때문에 당장 완벽한 취득과세형으로의 전환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요원하다. 우리는 당분간 불합리해 보이는 유산과세형 체제 안에서 살아남을 묘수를 찾아야 한다.
놀랍게도 유산과세형의 최대 골칫거리인 '연대납부의무'는 시각을 조금만 비틀면 상속세를 극적으로 줄이는 가장 강력한 절세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핵심은 바로 '배우자 상속공제'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데 있다.
세법은 남은 배우자의 노후 보장과 공동재산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여, 배우자가 실제 상속받은 금액에 대해 법정상속지분 한도 내에서 최대 30억 원까지 배우자 상속공제를 허용한다. 절세 컨설팅의 하이라이트는 상속재산 중 현금, 예금 등 '유동성 있는 재산'을 최대한 생존 배우자의 몫으로 몰아주어 이 30억 원의 공제 한도를 꽉 채워 받는 것이다.
이후 상속인 전원에게 부과된 총 상속세 중, 현금을 쥔 배우자가 자신의 고유 재산이 아닌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 자녀들이 내야 할 상속세를 대신 납부해 주는 것이다. 원래 남의 세금을 대신 내주면 증여세가 부과되지만, 상속세 연대납부의무 규정에 따라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 다른 상속인의 세금을 대납하는 것은 법적으로 '새로운 증여'로 보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자녀의 세금 부담을 없애면서, 훗날 배우자 사망 시 발생할 2차 상속세의 재원(배우자 재산)까지 미리 줄여놓는 완벽한 일석이조의 효과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현행 세법상 사망일 전 10년 이내에 상속인(배우자 포함)에게 사전증여한 재산은 상속재산에 다시 합산된다. 만약 절세를 한답시고 배우자에게 30억 원을 사전증여했는데 10년 안에 상속이 개시된다면, 이 재산은 고스란히 상속재산에 얹어질 뿐만 아니라 '상속개시 당시 배우자가 실제 상속받은 재산'이 아니므로 든든한 방패였던 배우자 상속공제 혜택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전증여를 안 하느니만 못한 최악의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자에게 재산을 미리 넘기려거든 상속개시 10년 이전에 철저한 계획하에 증여를 마치든지, 아니면 아예 증여를 미루고 상속 시점에 배우자 상속공제와 연대납부의무를 극대화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현행 상속세제는 불합리해 보이지만, 법의 테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배우자 상속공제와 재산 분할, 그리고 타이밍을 적절히 조합하면 얼마든지 가족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 위기가 곧 기회이듯, 치밀한 사전 설계만이 유족 간의 갈등을 막고 아름다운 승계를 완성하는 유일한 열쇠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완일 세무사 프로필]
△ 세무법인 가나 대표세무사
△ 주식평가연구원장
△ 한국재산신탁협회 부회장
△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역임
△ 국회입법조사처 국민공감입법혁신위원 역임
△ 기재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행안부 지방세발전위원회 위원 역임
△ 국세청 재산평가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 한국세무학회·한국세법학회 부회장 역임


